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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맥노턴.

취임 100일 MB 정권 ‘중병’의 실체
일요신문 | 기사입력 2008.06.05 18:11

50대 남성, 대전지역 인기기사

옛날 의료시설이 미비해 신생아들이 죽는 경우가 많았을 때, '백일'은 생과 사를 결정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100일이 넘으면 '아기가 이제 살 수 있겠구나'라며 확신을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100일을 중시했다. 정치에도 백일은 국정 운영 초반의 성패를 가름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100일 만에 앞으로 5년 동안 '살 수 있는지'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지난 22일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고개 숙인 이 대통령의 뒤로 국무위원들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명박 정권의 지지율이 40%에서 20%대로 주저앉았다. 취임 100일 만에 국민들에게 외면당한 이 대통령의 속내는 과연 어떨까. 청와대사진기자단

'쇠고기 파동'으로 거리는 날마다 촛불집회가 열려 5공화국 시절의 6·10 항쟁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쇠고기 파동에 이은 민심 이반은 정권 퇴진 구호와 함께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확대되면서 '6월 위기론'도 퍼지고 있다. 사람이 소를 잡는 게 아니라 쇠고기가 사람을 잡는 희한한 정국이 2008년 대한민국 정가의 자화상이다. 정부 여당도 성난 민심을 진정시킬 대책 마련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취임 100일이 채 되지도 않아 위기 국면을 맞게된 이 대통령은 과연 어떤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민심이 너무 흉흉하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 초기에 인사 파동 등으로 흔들릴 때만 해도 "저러다 잘하겠지"라며 인내심을 보이는 국민들이 많았다. 하지만 정권 출범 100일을 맞은 지금, 이명박 정권의 여론 지지층인 수도권과 40대가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지지율이 20%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내각제 같으면 바로 내각 총사퇴를 해야 하는 위기상황이라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민생경제 회복을 입버릇처럼 외쳤던 이명박 정권이 바로 민생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내몰리고 있으면서도 특단의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 전국 수천 개의 음식점이 식자재 상승 등으로 폐업을 하고 있고, 고유가로 화물차는 엔진을 끄고 파업에 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교육비, 병원비, 통신비와 함께 생활물가의 중심축을 이루는 식품, 교통, 유류, 일반약품 가격이 뛰면서 서민들의 등골도 휘고 있다. 정부는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지만 기름 값 고공행진에 따른 물류비 증가와 각종 원자재 값 상승에 맞물린 생활비의 가파른 오름세를 꺾지 못하는 양상이다.

더 큰 문제는 쇠고기 파동이 정권 퇴진 운동으로 확대되면서 이명박 정부의 운신 폭도 매우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5월 29일 미국산 쇠고기의 새 수입 위생조건을 담은 장관 고시를 발표하면서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는 참여를 망설이던 시민들뿐만 아니라 비운동권 대학 총학생회까지 가세해 정권 퇴진 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6월엔 시민들을 끌어 모을 만한 상징적인 날들이 많아 정치권에선 이명박 정권의 '6월 위기설'도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 현재 촛불집회를 이끄는 주도세력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는 6월 3일과, 6·10 항쟁 21돌인 10일, 효순·미선 양 6주기인 13일 등에 대규모 집회를 계획 중이다. 경찰 한 관계자는 "6·10 항쟁 기념일 등도 걱정이지만, 사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는 7월까지 시위가 이어지는 게 더 걱정"이라고 털어놓는다.

시중에는 '노무현 예언'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하니 좀 끔찍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그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고 있다는 게 네티즌들의 생각이다. 인터넷 댓글에는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고(교생)와 싸운다" "노무현은 국회의원들이 탄핵 요청했고, 이명박은 국민들이 탄핵 요청한다"는 등의 말들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노무현 정권 때 유행했던 "모든 게 노무현 탓이다"라는 말도 "모든 게 이명박 탓이다"라는 말로 대체돼 유행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출범 100일 만에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그 위기감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귀국한 이 대통령이 무엇인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쇠고기 파문에 조기 대처하지 못한 데 따른 책임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더 이상 떨어질 경우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어려울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라고 말한 점을 보면 이 대통령도 현재 시국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대대적 인적 쇄신에 대해선 이 대통령이 "세게 훈련했는데 뭘 또 바꾸느냐"라고 언급했던 점을 미루어 현재로선 유동적이다. 특히 개각을 단행할 경우 청와대 핵심 라인의 실책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부담도 있다. 차기 당 대표로 유력한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도 쇠고기 협상 책임자에 대한 문책이 이 대통령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밝혀 인적 쇄신은 최후의 카드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지난 대선 과정에서 맹활약했던 한나라당 소장그룹의 관계자 A 씨는 "청와대가 현 시국을 초등학생 수준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한마디로 걱정스럽다"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사실 정부 출범 초 일부 실세들의 인사 전횡을 보고 현 정권의 성공은 어렵겠다고 보았는데 현재의 정국 진행은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빠르다는 점에서 악성종양과 같다. 이 대통령 자신이 '언제나 국민은 정치인을 앞서 간다'라고 말했는데 이번 쇠고기 문제의 촛불집회가 그 말을 그대로 확인시켜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마추어 수준의 상황 인식은 촛불집회를 보는 현 정권의 대응 방안에서 잘 드러난다. 한나라당에서 오랫동안 전략·기획업무를 해온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촛불집회에 대해 청와대는 배후 규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국민들은 먹거리를 걱정하며 생활 이슈를 제기하는데, 현 정권은 그것을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려고 한다. 청와대는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고 있지만 현재의 사태가 강성 좌파나 불순세력의 선동 탓에 발생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아젠다 세팅은 조·중·동에 길들여진 일부 보수층에는 마약과 같이 달래는 효과가 있지만 현재의 촛불집회는 조·중·동의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는 인터넷을 통해 여론이 급속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 인식과 처방이 모두 틀렸다. 청와대의 기본적 상황 인식이 잘못됐기 때문에 어떤 대응 방안을 내놓아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이에 대해 "말썽이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만 해도, 이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가 반미 감정, 좌파 이념 때문에 미국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따라서 수입을 허용할 경우 문제가 될 법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검토 이전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나서게 된 것이다. 이념적인 이유로 (쇠고기 수입을) 막았기 때문에 이제 보수 정부가 출범한 이상 그걸 막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먹을거리를 이념 문제로 바라보면서 이명박 정부는 지지율 급락과 함께 대 국민 사과 성명까지 내야 하는 곤경을 겪게 되었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렇게 이 대통령이 현 시국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인의 장막'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할 기능적 인물들만 기용한 것이 문제란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의원은 이에 대해 "경험과 경륜을 갖춘 사람을 계파와 여야를 초월해 중용했어야 하는데 '현대그룹'식 발상으로 상명하복에 딱 맞는 측근들만 그의 주변에 배치한 것이 결국 그들을 '예스맨'으로 만들고, 대통령은 쓴소리보다 달콤한 소리만 듣게 돼 민심과의 괴리를 불러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한 "지난 경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 참모들은 성실하게 해명하는 대신 온갖 '얕은꾀와 책략 그리고 모략적인 반응'으로 위기를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이 대통령에게 깨지더라도 직언을 하고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고 정도가 아니더라도 교묘하게 상황을 피해나갔다. 지금도 그런 참모들이 이 대통령 곁에서 핵심 요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청와대에 토론보다는 명령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참모들이 대통령의 눈치만 보며 명령만 기다리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현재 실세로 불리는 B 씨는 자신의 인맥 위주로 인사를 펴 주변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게 왜곡되게 추천된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겠는가. 이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 C 씨도 청와대의 군기반장으로 군림해 아랫사람들이 그의 눈치만 보고,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언로도 봉쇄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그는 최근 한 회의에서는 D 수석의 활동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쓴소리를 해 월권이라는 뒷말을 남기기도 했다. 10년 넘게 이 대통령을 보좌해 온 일부 측근들은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말들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이 대통령은 예전보다 민심 청취의 기회가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에 더욱 국민들의 생각과 괴리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그에 대한 '지지'도 있었지만 '좌파정권 종식'과 '경제 살리기'에 대한 '염원'과 '기대' 때문인데,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인사 스타일을 계속 고집하는, 독단적 행태를 보이자 지지층이 급속히 이탈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게 되면서 자신의 근원적 지지층이었던 범보수 진영으로부터도 외면당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에 대해 보수 진영이 거의 맞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갈등으로 보수진영의 '1차 엑소더스(대탈출)'가 이뤄졌다. 그리고 정권 출범 초 공무원들을 무시하는 언행(전봇대 발언, 일산경찰서 직접 방문 등)으로 공무원들의 '2차 엑소더스'가 이뤄지면서 이 대통령을 근원적으로 지탱해주던 지지층이 급속도로 와해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공무원은 거의 없다.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만 이행할 뿐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대기업 회장 시절을 떠올리며 공무원들이 비리의 온상인 양 매도하는 데 매우 분노하고 있다. 이 상태대로라면 아마 이 정권 끝날 때까지 공무원들은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너희들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라고 말하며 꼼짝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특히 정무직을 제외한 고급공무원 층의 이탈은 앞으로 더 심각해지고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이명박 정권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기업인 시절에서 비롯된 계약 당사자 중 약자의 입장인 '을의 추억'을 떠올리며 공무원들을 몰아세우고 있지만 그런 '소몰이'로는 결코 공무원들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의 공무원 사회 개혁 의지 저변에 30여 년 동안 공무원에게 '뜯겨온' 그의 개인적 감정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개혁의 출발점이 잘못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이명박 정권에는 수만 가지 처방전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그 수많은 처방전에 있는 약을 복용할 뜻이 없거나, 오히려 자신의 진정성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국민들을 '신 권위주의'라는 방망이로 내려칠 경우 백약이 무효일 것이라고 정치권의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백일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 빨리 생과 사의 기로에 선 것은 그의 불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생 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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