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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 퇴계와 권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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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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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 퇴계와 권대감  

 

지금으로부터 약 420년 전의 일이다.


권률 장군의 부친이며 宣祖 때의 명재상인 백사 이항복의 처조부님이 되시는 권철 대감은영의정 벼슬까지 올랐지만 항상 학식이 깊고 덕망이 높은  李退溪 선생을 숭배하고 있었다.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내려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退溪선생을 만나 보려고 권철 대감은 어느 날 서울에서 550리나 되는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서원까지 내려갔다.


退溪선생은 동구 밖까지 나가 예의를 갖추어 권철 대감을 공손히 영접하였고,

두 학자는 기쁜 마음으로 여러 시간동안 학문을 토론하였다.


그러나 그날 저녁상이 나왔을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권정승과 퇴계선생이 겸상으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 밥상에 올라있는 음식이 보리밥에 콩나물과 가지나물 등 채소 뿐이었다.


그래도 그 날은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해서 특별히 북어무친 것이 하나 더 있을 뿐이었다.

퇴계선생은 언제나 제자틀과 같이 이러한 보리밥에 초식생활만 해 왔기 때문에 별 일이 아니였지만 평소 쌀밥에 고기 반찬만 자시던 권철 대감 입에는 이런 식사가 맞을 리가 없었다.


권 대감은 몇 숟갈 뜨는 척 하다가 수저를 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또 그와 똑같은 조반상이 나왔다.

권철 대감은 배가 몹시 고픈 상태였지만 깔깔한 보리밥을 도무지 먹을 수가 없어서 조반상도 어제와 같이 몇 숟갈 떠 자시다가 상을 물렸다.


퇴계선생이 아니라면 투정이라도 하겠지만 상대가 워낙 스승처럼 존경해 오던 분이라 음식이 아무리 마땅치 않더라도 감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권철 대감은 도산서원에 며칠 더 머물면서 퇴계선생과 깊은 학문을 토론하고 싶었지만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더 묵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은 예정을 앞당겨 부랴부랴 서울로 떠나게 되었는데,

권철 대감은 작별에 앞서서 퇴계선생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ꡒ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가 금방 헤어지게 되니 섭섭하오.

내가 퇴계선생을 만났던 기념으로 귀감이 될 말씀을 한 마디만 해 주시오 ꡓ


권 대감의 이 말에 퇴계는 옷깃을 여미고


ꡒ 촌에 묻혀있는 사람이 감히 대감님께 무슨 여쭐 말씀이 있겠습니까 ?

그러나 대감께서 모처럼 부탁하시니 제가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대감께서 이처럼 먼 곳까지 오셨는데 제가 융숭한 식사 대접을 못해드려서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대감께 올린 식사는 일반 백성들이 먹는 식사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는 성찬이었습니다.

농부들이 먹는 음식은 깡보리밥에 된장찌개 하나가 고작이고,

그나마도 모자라서 굶는 날이 많습니다.

 

그런데 대감께서는 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제대로 잡수시지 못하시는 것을 보고

저는 이 나라 장래가 은근히 걱정되옵니다.

무릇 정치라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과 백성이 동고동락을 해야 하는데 관과 민의 식생활부터 이처럼 차이가 있으면 어느 백성이 나라를 믿고 살겠습니까 ?

그 점을 각별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ꡓ


퇴계 선생의 이 말은 권철 대감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충언이었다.

퇴계선생이 아니고서는 감히 아무도 영의정에게 말할 수 없는 대쪽 같이 곧은 말이었다.


대감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숙였다.


ꡒ 참으로 선생이 아니고서는 누구에게서도 들어 볼 수 없는 충고입니다.

나는 이번 행차에서 깨달은 바가 많아 집에 돌아가거든 선생의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에 옮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ꡓ 하고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였다.


성인이 성인을 알아본다고 할까,

권철 대감 역시 덕망이 높은 정승이라 퇴계선생의 충고를 거듭 고마워했다.


서울에 올라온 권철 대감은 가족들에게 퇴계 선생의 말을 자상하게 전하는 동시에,

그 날부터는 퇴계 선생을 본받아 일상생활을 지극히 검소하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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