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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선행이 맺은 커다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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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노턴
 

몹시 추운 1942년 겨울의 어느 날 오후, 금발의 더벅머리 때문에 '스위드'라는 별명이 붙은 13살의 한 소년이 00극장에 앉아 있었다. '블론디 대학에 진학하다'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낯익은 신문만화의 주인공 블론디가 아들을 군사학교로 떠나 보내면서 자신도 집안 일에서 벗어나 뒤늦게 대학에 공부하러 가는 장면이 나오자 장내의 관객들은 큰 박수갈채를 보냈다. 스위드의 친구들도 덩달아 박수갈채를 보냈는데 스위드만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위드는 이렇게 말했다.

"장차 나도 군사학교에 가고 말거야" 스위드의 친구들은 그의 이 말을 듣고 모두 깜짝 놀랐다. 이윽고 한 아이가 '물론이지. 우리 모두 군사학교에 갈걸 뭐'하면서 웃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모두 '와'하고 웃었다. 그들이 사는 고장은 조그만 공업도시로 남자아이들은 대개 다 자기 아버지가 살던 방식대로 공장에서, 도살장에서 또는 스위드의 아버지처럼 세탁소에서 일을 하며 사는 고장이었다. 그날 저녁 잠자리에 누워 자기의 꿈을 되새기던 스위드는 '내가 군사학교에 가려면 내 힘으로 가는 수밖에 없어' 하고 생각했다. 스위드는 어느 제빵 회사에서 야간에만 근무하는 일자리를 얻어 트럭에 빵을 싣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에는 신문을 집집마다 던지는 일을 했다. 매주 1주일 동안 번 돈을 은행에 저축했으며 자기가 군사학교의 생도 제복을 입을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며 흐뭇해했다. 그후 한 해 여름을 더 그렇게 일한 스위드는 고등학교 겸 초급대학에 해당하는 군사학교에 입학할 등록금 대부분을 모았다. 그리고 그 해 가을날 스위드는 꿈을 이룬 기쁨으로 학교생활에서 다른 생도들은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고된 훈련도, 교실내의 학과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여 우수했고 운동장에서의 갖가지 운동도 잘했다. 그러나 두 번째 학기가 끝나갈 무렵 그는 학교를 마치기 위해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학비를 마련해야만 했다.

집에 돌아간 스위드는 공장에 나가 일을 했다. 매일 공장문을 들어설 때마다 그에게는 '나는 실패자로구나'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리고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생각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간절했다. 그러나 어떻게 대학에 간단 말인가? 그런데 어느 여름날 군사 학교에서 친밀하게 지내던 ○○선생님이 찾아와서 학비와 생활비를 다 줄 테니 학교로 돌아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어떤 부부가 군사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잃었는데 그 아들의 생명보험금을 장래가 유망한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쓰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은 스위드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스위드는 군사학교에 다시 돌아간 순간부터 굳게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곧 우등생이 되었고 이어 생도소대장이 되었다. 게다가 학교 미식축구팀 선수로 뽑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스위드는 ○○부부에게 편지를 써 보내 기쁨과 승리를 함께 나눴다. 그의 미식축구팀이 우승했을 때는 경기에 사용된 미식축구공을 보내기도 했다.

스위드는 군사학교를 졸업하기 바로 전날 저녁에 그 부부와 식사를 같이 했다. 그들은 정말로 스위드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저는 ○○대학에 지원서를 냈어요" 스위드가 말했다. 다음날 스위드는 자기 아버지와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초급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식이 끝난 후 ○○부부는 스위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대학 학비도 대주기로 결심했어." 그래서 대학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군인에게 주는 장학금으로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는 동안 ○○부부와 늘 연락을 취했다.

교육은 스위드에게 어린 시절의 가난과 곤경에서 벗어나 더 넓은 사회로 진출하는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회사에 들어가 영업과 마케팅 부문의 일을 했으며 부사장의 직위까지 올라갔다. 그는 교외의 부유층이 사는 동네에서 살면서도 ○○부부의 도움에 힘입어 이룩한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늘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거리를 차를 몰고 지나가다 어린이들이 길바닥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 아이들은 장차 어떻게 될까? 좀 더 나은 생활을 해보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떻게 하면 ○○부부로부터 받은 은혜를 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까?' 그의 머리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던 어느 날 재고품을 싸게 사다 팔아서 큰 이익을 내는 한 회사에 관한 기사를 읽고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큰 회사들로 하여금 남아도는 재고품들을 그런 물건이 필요한 대학생들에게 싸게 팔고 그 돈으로 장학금으로 주면 어떨까? 그러면 물품을 대학에 기증한 회사들은 그만큼 면세혜택을 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이득을 보게 될 것이 아닌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마침내 스위드는 EAL이라는 교육재단을 설립해 활동을 시작했다. 여기 저기서 대학에 사무용 가구들을 대량 기증함으로써 설립 2주년이 될 무렵에는 11개 대학의 60명의 젊은이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불하면서 스위드의 가슴은 자부심으로 부풀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일은 그 ○○부부의 은혜에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했었는데 그분들이 생존해서 자신들이 베푼 선행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1982년 스위드는 EAL장학금으로 700만 달러를 모금하여 미국 전역 대학에서 1,300명 이상의 학생들을 도와주었다. 그 동안의 업적을 회상하며, "하나의 작은 선행이 이렇게 큰 열매를 맺었구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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