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끔찍한 교통사고 ]
사람이 태어나 하늘이 주신 명 만큼 살다가 가장 깨끗하고 고통없이 숨을 거두는 것도 복일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을 경우, 가해차가 도주해버리면 그 차량을 잡기란 지극히 어려운 것으로 흔히들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어렵고 까다롭지 않다. 비명횡사한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서도 범행차량은 반드시 잡히게 되어 있다.
신록이 우거진 8월초께였다.
새벽 잠을 완전 털고 일어나 책을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당시 부산00경찰서 수사과장이던 최모씨의 긴장된 목소리가 전화통을 짓누르듯 했다.
“김박삽니까? 새벽부터 이거 미안합니다. 좀 나와 주셔야겠습니다. 차가 지나 가면서 완전머리를 으깨놓은 사건입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요....”
사건현장은 부산남구00동 바다를 면한 해변 바로 뒷길이었다. 시멘트로 포장된 노폭 8m의 이 길은 당시만 해도 주택이 듬성듬성 들어선 한적한 곳으로서 차량통행 역시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변사체는 이 시멘트 포장길 십자로 한모서리 가까이에 있었다. 날씨가 더우니까 길에다 돗자리를 깔고 머리를 길 한가운데를 향해 누워서 자다가 한밤에 변을 당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돗자리와 베개 등이 그대로 있었고 변사자의 얼굴은 식별이 불가능할만큼 부서져 있었다.
자동차 바퀴에 피가 묻어서 약 20m가량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어떤 유형의 차인지 또 어느 쪽 바퀴에 변을 당한 것인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
사체의 강직도라든가 사반 그리고 직장체온 등을 종합해보니 사망시간은 자정부터 새벽1시 사이였다. 목격자가 없었다. 사건은 일단 오리무중에 빠지는듯 했다.
수사진들이 계속 현장을 뒤졌으나 단서가 될만한 것은 한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변사체의 신원만 확인될 뿐이었다. 42세의 남자로서 바로 사고현장 앞에 사는 사람이었다. 십자로 중 변사자가 잠자던 모서리는 밭이었는데 밭과 길사이는 가시덩굴로 벽이 쳐져 있었다. 가시덩굴과 차바퀴의 흔적을 재어보면 차폭을 알수 있을 것 같아 그 폭을 재어보자고 했다. 줄자로 폭을 재어보니 대형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의 진행방향으로 볼 때 오른쪽 바퀴가 변사자의 머리를 으깨놓고 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면 차체 왼쪽은 분명 가시덩굴을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는 게 수사진들의 견해였다.
오른쪽 바퀴 자국으로부터 왼쪽 바퀴와의 폭을 재어보니 그같은 결론이 나왔다.
“가시덩굴이 차체의 무엇이든 긁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찾아야 한다. 무엇이든 건덕지가 되는것을 반드시 찾아내라!” 수사과장의 엄명이 떨어지자 그야말로 길위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다 찾아서 집어들었다. 가시덩굴을 헤집기가 불편하자 낫으로 하나하나 베어나가면서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기시작했다. 가시덩굴과 같이 나있는 잡초까지 몽땅 베어나가면서 이잡듯이 뒤지길 2시간여 드디어 조그맣지만 단서가 될만한 물질이 하나 수사팀에 걸려들었다.
지름 약 1.5cm가량의 하늘색 페인트조각이었다. 차량페인트 전문가에게 문의결과 대형버스차체에 붙어있던 페인트임에 틀림없었다. 이것이야 말로 큰 수확이었다. 가시나무덩굴의 높이로 보아 지상에서 약 1m높이의 차체에서 떨어진 대형차량 즉 버스의 페인트였다.
사고지점은 노선버스가 전혀다니지 않는 소방도로였기에 시내에 운행되는 노선버스는 일단 수사선상에서 제외됐다.
전 수사진이 총동원되어 문제의 대형버스를 찾아나섰다. 부산시의 모든 대형버스의 행적과 실태파악에 들어가는 한편 주차장 각 회사 소속의 버스들을 뒤졌고 세차장도 조사했다.
그로부터 2주일후에 수사팀은 현 외환은행 범일동지점 옆 세차장에서 차체밑부분만 하늘색 페인트를 칠한 모회사 소속 통근버스를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페인트가 떨어져나간 부분이 사고현장의 페인트 조각과 맞아 떨어졌다. 떨어져 나간 부분 옆에도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었으나 그것도 가시에 긁히면서 미세하게 떨어져 나간 자국이었다.
그러나 수사는 또 난관에 부딪혔다. 문제의 버스운전사가 완강히 부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어떻게 해서 통금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큰 차가 그곳을 갈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하는게 아닌가 (당시는 통금이 있었다.)
그래서 검찰이 내게 문의를 해왔다. “사건이 난지 2주가 지났는데 차바퀴에서 혈흔이 나올수 있느냐?” 는 것이었디. 물론 가능했다. 혈흔검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운전사는 “얼마든지 해보라”고 큰소리쳤다.
담당검사와 수사과장및 형사계장 그리고 담당형사는 물론 운전사와 차주 등 모두가 입회한 가운데 검사를 시작했다.
버스의 바퀴 6개를 모두 떼어내서 혈흔검사 시약을 뿌렸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수사진 모두가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다음은 동체와 접착되는 부위의 쇠붙이 부분에다 시약을 뿌렸다. 그랬더니 쇠와 고무사이에서 혈흔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사고당시 흘러나온 피의 일부가 그곳까지 스며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씻고 닦아도 그 부분까지는 미처 생각나지 못했던듯 했다. 그래도 운전사는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그 혈흔을 국립과학연구소에 급송, 회신을 받아보니 변사자의 혈액형과 동일형임이 드러났다.
그제서야 운전사는 범행일체를 자백했다.
이 버스는 그날밤 통금시간이 지나자 큰길로 가기가 두려워서 뒷길로 접어들은데다 시간에 쫓기자 과속으로 달리다가 커브길에 누워있는 사람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것은 또다른 케이스. 지난 80년7월말 어느날 아침 경남00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한 차량을 1주일만에 잡았는데 심증은 굳으나 물증이 없으니 혈흔검사라도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경남김해시에서 진영쪽으로 빠지는 아스팔트 국도 네거리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36세의 남자가 과속차에 받혀 즉사한 사고였다.
사고당시 부검결과 사망시간은 새벽1시께로 밝혀졌다. 새벽1시께 이길을 가던 피해자가 과속으로 달리던 차량에 치였으며 곧 수사에 들어간 경찰은 수사선상에다 우유배달한 탑차를 올려놓았다.
목격자는 없었으나 사건현장에서 약2백m 떨어진 구멍가게 여주인의 진술이 결정적 단서가 됐다.
새벽1시께 우유를 싣고 다니는 차가 지나가는 걸 가게 여주인이 문을 닫다가 목격했다고 말했다. 통금이 있던 때라 그 시간에 통행하는 차량이란 그리 흔치 않았다. 그 차가 거의 확실하다고 믿은 경찰은 곧 수사를 진행시켰다.
사고현장인 십자로를 중심으로 가게에서 90도로 꺾어진 대로변에 s우유 총판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확인하니 그날밤 우유배달차가 12시 좀 지나서 우유를 내려놓고 갔다고 했다. 문제의 차를 1주일만에 전남 순천에서 잡았으나 운전사는 극구 부인했다. 그곳을 지나긴 했으나 사람을 친 사실은 없다고 했다. 이 사고차량 역시 바퀴 6개를 모두 떼어내서 혈흔검사 시약을 뿌렸다. 그들이 바퀴를 깨끗이 씼었을 텐데도 왼쪽 뒷바퀴에서 시약이 형광색으로 변했다. 그 즉시 그들을 연행, 신문했다. 운전사는 서서히 자백하기 시작했다.
사고당시 운전사는 잠을 잤고 조수가 대신 차를 몰았다고 했다. 깜깜한 시골길이라서 어림잡아 달렸는데 뭔가 툭 받히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피해자는 술에 취해 있었음이 나중에 드러났다. 당시 00경찰서의 노련한 수사팀이 끈질기게 사건을 물고 늘어진 결과 얻은 쾌거였다.
인터넷에서 가져옴. (출처불명)
아마 밤에잠을 못잘것같애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