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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이 아니라, 학생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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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노턴

2021. 1. 4

 

<학교폭력>으로 단순하게 정의하고, 학교에 모든 것을 떠넘기고 나니
청소년들이 일으키는 아주 복잡한 폭력적인 문제를 그들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자칫, <학생폭력> 내지는 <청소년폭력>으로 올바르게 정의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면,
원인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얼마이며,
공동체의 규범, 절차, 환경까지 머리를 맞대 살피고 고치는 귀찮은 수고가 이어졌을을 테니,
상상만 해도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겠는가.


잘못된 정의. 학교폭력

학교에 소속된 학생들이 학교를 중심으로 안팎에서 일으키는 모든 폭행과 폭력에 대해, 우리는 <학교폭력>으로 단순하게 정의하고 있다. 학교폭력이 아니라, 학생폭력 내지는 청소년폭력 임에도 말이다. 어떠한 문서보다도 정교한 용어를 사용해야 할 법령 뿐만 아니라, 중요정책, 규정, 뉴스, 미디어,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학교폭력> 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사용한 덕분에(?) 폭력이라는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책임소재가 뒤엉킨 복잡한 문제를 <학교>라는 틀 안에 가두어 버렸다.

마치, 감기, 장염, 폐렴, 패혈증 처럼 발열이라는 눈에 보이는 현상 하나만으로 열병fever이라고 부르고 해열제라는 하나의 치료제를 처방하려는 꼴이라고나 할까? 청소년비행, 학생성폭력, 집단괴롭힘, 교사폭행, 청소년사이버폭력 등등 뭉뚱그려 <학교폭력>으로 처리하다 보니, 2차 폭력을 넘어 3차, 4차에 이르는 간접적 폭력이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 그 체계와 깊이를 온전히 나누자면, 책을 한 권 써야 할터이니, 안과 밖의 두 가지 관점으로만 남겨본다.

첫째, 책임을 전가하면 책임이 사라진다.

첫째, 학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정작 책임져야 할 자들이 그 뒤에 숨어버렸다. 그렇다. 말 그대로 학교폭력이다. 단어만 보아도 학교와 학생이 일으키는 사건이고, 응당 학교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학생들이 저지른 문제는 잘못 가르친 학교가 교육을 통해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이렇듯 학교와 학생 당사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왜 교육지원청이 그런 민원을 해소해야 하며, 왜 바쁜 경찰을 학교운영위원회에 오라가라 하는지, 왜 부모가 바쁜시간을 내어 학교에 오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단편적 사고가 팽배해 지는 이유이다. 이게 다 <학교폭력>이라는 잘못된 정의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그릇된 행동을 가르치는 학교가 전세계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학생의 지식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은 학교의 몫이지만, 그들의 내면을 키우고 돌보는 것은 엄연히 사회의 책임이다.

  • 폭력의 주체가 된 학생의 부모가 얼마나 자녀를 책임감 있게 양육 하였는가?
  • 법이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해 얼마나 공정하고 엄격하게 집행되고 있는가?
  • 사회적 장치와 환경이 얼마나 투명하고 안전한가?
  • 사회는 미디어와 사례를 통해 청소년의 삶에 대해 얼마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 몇 가지 질문 속에서도 책임을 져야 할 사람과 기관이 한 둘이 아닐터. 모두가 모여 해결해야 함에도, 의지박약을 감추고 피책임완벽주의(아무도 책임진 사람이 없으면, 완벽한 것이다. 복지부동에 면피를 더함.)를 위한 희생양을 학교로 삼으면 모든게 한 번에 해결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사법기관이 폭력을 접수하여 공명정대하게 법대로 처리하는 대신 학교폭력위원회에서 해주면 된다. 원인이 되는 정책과 환경의 문제는 선제적으로 지자체와 정부가 사법기관과 공조하는 대신 교사들이 요청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리해주면 된다. 법과 제도의 보완은 입법기관이 할일이나 피해자의 권리보다 가해자의 권리를 우선 해야하는 입장에서 급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무엇보다 부모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한 강력한 책임을 부여하고, 부모를 돕거나 대리할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이 필요하겠지만 예산부족을 핑계삼으면, 통째로 부모에게 미룰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 일인가.

둘째, 폭력을 해결할 폭력적 절차의 대물림

둘째는 학교폭력이라는 용어로 학교와 학생들 사이에 불신이 쌓이도록 함으로써, 책임자들에게 쏟아질 지적과 논란을 피할 수 있다. 남의 손에 굳이 피를 묻힐 필요 있겠는가? 학교에 강력한 몽둥이를 주고, 학생을 벌하도록 하면 일소에 해결될 일이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위험하고 폭력적인 정책인지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와 입법, 사법기관들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게 앞서 말한 책임전가보다 더 끔찍한 일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어 대신 한글을 쓴 조선인에게 다른 조선인들로 하여금 비판하고 두들겨 패도록 지시하는 일본인 교사의 이야기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학교와 교사는 어떤 입장에서든 양측의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양쪽 편에서 그들을 품어주고 대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정책은 학교와 교사를 앞세워 수족과 같은 학생들을 징계하라 하고, 이를 위해 경찰과 지역사회 위원들을 모아 법정을 열고 <재판>을 하고 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와 부모와 학생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역할과 위치가 완전히 뒤죽박죽이다. 학교가 법원이 되어 위원회를 통해 재판을 하고, 교사는 검사가되어 온갖 잘잘못을 들춰내고 증거를 제시하며 구형하고 있고, 피해학생과 부모, 가해학생과 부모가 안전장치 없이 뒤섞여 서로가 억울하다며 아우성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교육적인 곳을 찾아볼 수 없다. 사법제도를 어설프게 따라하였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완전히 비교육적인 해결책을 사용하고 있다.

제대로 돌려놓자면 교사가 오롯이 피해학생을 보호해야 하고, 학교는 가해학생에 대해 변호해야 하며, 경찰과 법원이 공조하여 조사하고 따져봐야 한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법원의 공정한 판결에 따르는게 제대로 된 절차이다. 청소년들의 일인데 법원까지 가야 하는가, 너무 인정사정 없고 매정한게 아닌가 싶겠지만, 이게 우리 민주주의라는 공동체의 룰이자, 순리에 따르는 것이고 그러기에 교육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예외가 많아지면 혼란만이 가중될 뿐이다.

피해학생은 대신하여 원한을 풀 수 있어야 하고, 가해학생은 이유불문하고 책임을 져야만 한다. 후속조치로 이런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부끄러운 마음으로 부모와 지자체와 정부, 의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더욱 정진하여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찾고 공동의 과제로 개선해 나가면 될 일이다.

‌학교가 재판소인가

책임 떠넘기기 식의 <학교폭력>이라는 잘못된 정의definition가 학교와 부모와 학생과 정부와 공동체의 역할을 심각한 수준으로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을 짚어보았다. 교내에서 일어난 행위라면 <학생폭력>, 이외의 청소년들의 폭력행위는 <청소년폭력>이다. 학교라는 장소가 중요한게 아니라 학생, 청소년이라는 대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폭력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결정과 행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학교와 부모는 지금처럼 학생을 재판하고 징계하는 제2의 폭력을 행사 해서는 안되며, 피해학생을 보호 및 치유하고 가해학생의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교육적인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법을 어겼다면 학교가 아니라 사법기관이 엄정히 집행해야 하고, 일련의 사건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과 반성은 공동체 전체의 과제로 해결해야 한다.

때때로 정책을 입안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모아 교육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하는 자리를 열면, 학창시절 교사에게 받은 폭력적 체벌에 대해 몸서리를 치곤 한다. 이어서 학교가 폭력적이라며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하지만, 가슴아픈 일은 그런 세대들이 만든 정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결국 폭력적인 해법을 벗어나지 못한다. 학교 안에서 학생을 재판하게 하여 내쫓고, 바꾸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다니. 고작 내 놓은게 학교를 통해 더 지독한 폭력을 행사하는 꼴이라니.

정책입안자들이 그토록 증오하던, 두들겨 맞던 과거의 학창시절에는 사고를 치고 방황하다 경찰에 붙들린 학생들은 부모보다 먼저 연락받은 교사가 목덜미를 붙잡아 데려왔고, 학교가 책임을 진다는 조건으로 재판을 면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어 변호사, 검사, 판사, 경찰을 청하여 정식 재판도 아닌, 단지 처벌을 위한 간이재판을 열어 마녀인지 아닌지 검증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교육적이라 할 수 있는지 제발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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